목 없는 여성 시신에 경악…'천재 화가' 집에 긴급출동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입력 2023-04-29 07:19   수정 2023-05-11 20:01


“계십니까! 문 따고 들어갑니다!”

1920년대 초 오스트리아의 한 주택 앞. 경찰관들이 문을 다급하게 쾅쾅쾅 두드렸습니다. 잠시 후 푸석한 얼굴로 나온 집 주인. 그는 유명 화가였습니다. “무슨 일이길래 아침부터 이러십니까?” “목 없는 피투성이 여성의 시신이 선생님 집 앞에서 발견됐습니다. 지금 당장 경찰서로 같이 가 주셔야겠습니다.”

짜증이 가득했던 남자의 얼굴이 순간 멍해지더니, 갑자기 기괴하게 일그러졌습니다. 그리고 터지는 광기 어린 웃음. “하하하! 좋습니다. 그러시던가요. 다만 이건 아셔야 할 겁니다. 저건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에요. 보세요.”

그 말을 들은 경찰은 ‘사건 현장’을 다시 확인해 봤습니다. 남자 말대로 시신이라고 생각했던 건 사람처럼 만든 인형이었고, 피처럼 보였던 건 와인이었습니다. 돌아서며 경찰관들은 중얼거렸습니다.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원….” 100년 전 벌어졌던 이 기이한 소동의 주인공은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거장 오스카 코코슈카. 하지만 이 에피소드보다 더 기막힌 건 뒤에 숨겨진 미친 사랑 이야기였으니, 오늘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그 이야기를 코코슈카의 대표작들과 함께 풀어 봅니다.
클림트 ‘키스’ 모델? 유럽 흔든 ‘치명적 여성’

코코슈카의 사랑 이야기를 하려면 ‘희대의 팜므 파탈’ 알마 말러(1879~1964)의 이야기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녀는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사교계의 중심이었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화가)와 구스타프 말러(작곡가), 이번 기사의 주인공 코코슈카(화가), 모더니즘 건축·디자인의 산실인 독일 바우하우스의 초대 교장 발터 그로피우스(건축가), 프란츠 베르펠(시인·극작가) 등 수많은 뛰어난 예술가를 홀린 마성의 여자였지요.

그녀는 예쁘고 똑똑했지만, 대단한 미인이나 천재까지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엄청난 미인이라고 다른 사람이 믿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천부적인 ‘어장 관리’의 재능 덕분이었지요. 알마는 상대가 멀어지면 다가왔고 다가오면 거리를 뒀습니다. 육체적인 관계에 거리낌이 없는 듯하면서도 곧잘 상대를 밀어내곤 했습니다. 자신의 자존감을 위해 상대방을 모욕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런 행동은 낮은 자존감 때문이었다는 게 역사가들의 분석입니다. 수많은 남자를 찼던 그녀. 하지만 어쩌다 마주친 사람이 자신을 낮게 평가하거나 무례한 말을 하면 3일 동안 침대에서 흐느끼곤 했다네요. 이런 성격과 행보 탓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알마에 대해 ‘괴물’ ‘방탕한 여성’ 심지어는 ‘오만하고 멍청한 지구상 최악의 인간’ ‘그녀를 아내로 맞는 건 사형선고’라고들 했습니다.


그녀의 첫사랑은 17세 때 만난 구스타프 클림트였습니다. 당시 알마의 집은 오스트리아 빈의 명사들과 예술가들이 모이는 일종의 사교장이었는데, 그 집을 오가던 악명 높은 바람둥이 클림트가 알마에게 눈독을 들인 겁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랑이 오래 가지는 않았습니다. 클림트의 친구였던 알마의 아버지가 “내 딸한테 뭐 하는 짓이냐”며 제지한 덕분이었지요. 하지만 알마는 이를 계기로 자신의 매력에 눈을 떴습니다.

사교계 남자들의 마음을 가지고 놀던 그녀는 나이가 20살 가까이 차이 나는 천재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를 선택해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말러는 결혼 후에도 독신 시절의 생활 방식을 엄격하게 고수했습니다. 5분 단위로 일정을 관리했고, 함께 저녁을 먹을 때도 작곡에 대해 생각을 하느라 일절 말을 하지 않았지요.


알마는 자신의 이미지를 ‘천재 일 중독자에게 희생당한 아내’로 포장했습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습니다. 말러는 가부장적인 남편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알마의 대응을 칭찬할 수도 없습니다. 마구 바람을 피우고 다녔거든요. 이 사실을 알아챈 말러는 거의 미쳐버렸습니다. 교향곡 8번을 아내에게 헌정하는 등 비위를 맞추려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알마는 계속 바람을 피웠습니다. 그러던 중 말러는 건강 악화로 1911년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사람들은 “말러가 아내 때문에 피가 말라 죽었다”고들 했습니다.
코코슈카의 광적인 재능과 집착

알마가 자신보다 일곱살 연하의 화가 코코슈카를 만난 건 1912년입니다. 당시 알마는 33살, 코코슈카는 26살이었습니다. 코코슈카는 비범한 재능의 소유자였습니다. 클림트가 1908년 자신의 전시회에 스물두 살에 불과한 코코슈카를 포함하며 그를 “젊은 세대 중 가장 위대한 재능을 갖고 있다”고 칭찬한 적도 있었습니다. 코코슈카는 자신만의 기괴한 화풍으로 빈 상류층 인사들을 그린 초상화로 특히 유명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혁명가, 도발적인 괴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천재’로 평가했습니다.


재능만큼이나 코코슈카의 성격도 범상치 않았습니다. 그는 열정 넘치는 사랑꾼이었습니다. 동시에 엄청난 집착남이었지요. 이틀에 한 번 꼴로 주고받아 총 400통 넘게 남아있는 편지 속에는 이런 구절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당신이 나를 택하지 않으면 내 위대한 재능은 없어질 거야. 날 이끌어 줘.” 알마는 훗날 이렇게 회고합니다. “코코슈카와 사랑했던 3년만큼 지옥과 천국을 여러 번 오간 적이 없었다.”

코코슈카의 집착은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사교계의 중심이었던 알마가 다른 남자들과 말 한마디 섞는 것조차 극도로 싫어했으니까요. “내가 당신 곁에 있든 없든, 당신은 나만 봐야 해.” 알마의 집을 찾아온 방문객들을 불쾌하게 하거나 모욕하는 일도 다반사였습니다. 죽은 전남편인 말러까지도 질투의 대상이었습니다. 1912년 6월 26일 말러 교향곡 9번의 초연 전날 코코슈카는 이렇게 소리쳤다고 합니다. “죽었든 살았든, 다른 누군가가 당신의 일부라는 걸 견딜 수 없어!”

코코슈카의 집착과 알마의 바람기 때문에 둘의 관계에는 점차 균열이 생겼습니다. 알마는 코코슈카에게 조금씩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코코슈카도 친구들에게 “저 여자와 당장 헤어져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요. 코코슈카의 어머니는 친척에게 쓴 편지에서 “내가 그 여자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1912년 알마가 임신한 일은 오히려 이들의 관계에 지우지 못할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제 알마와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한 코코슈카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같이 살기만 하면 집착하지 않을게. 저녁에 외출하는 것도 허락해 줄게. 밤이면 다시 집으로 돌아올 테니….” 하지만 알마는 코코슈카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고, 결국 낙태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코코슈카는 1914년 12월 기병대에 자원입대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 평소 알마와 싸울 때면 알마가 자신을 ‘겁쟁이’라고 불렀다는 게 첫 번째였고, 다른 하나는 자포자기였습니다. 코코슈카가 전장에서 생사의 기로를 오가며 싸우던 1915년, 알마는 몰래 편지를 주고받던 전 남자친구(그로피우스)와 비밀 결혼을 해 버렸습니다.

3개월 후 코코슈카는 우크라이나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심각한 상처를 입어 생사의 기로를 헤매게 됐습니다.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와 부상에서 회복하긴 했지만, 코코슈카는 알마가 다른 남자와 새로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광적인 이상 행동이 시작됐습니다. 당대 유명한 인형 제작자에게 알마의 인형을 만들어 달라고 한 뒤 사람 옷을 입혀 여기저기 데리고 다닌 겁니다. 인형 제작자에게 보낸 그의 요구사항은 더욱 소름이 끼칩니다.

“내 사랑하는 사람의 실물 크기 그림을 보냈소. 아주 세심하게 현실로 만들어주시길 바라오. 머리와 목, 목에서 등까지의 라인, 배의 곡선, 목과 사지의 치수에 특별히 주의해서 만드시오. 아, 그리고 입 안에는 이빨과 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하지만 이듬해 완성된 인형은 기대에 한참 못 미쳤습니다. 코코슈카의 요구사항은 최대한 사실적으로 인형을 만들어달라는,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리얼돌’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지만, 결과물은 전위 예술에 가까웠습니다. “코코슈카가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 인형 제작자가 일부러 그런 것”(보니 루스 웨스트 텍사스 A&M대학 교수)이라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요. 인형을 받아본 코코슈카의 감상도 이랬습니다. “이게 뭐야. 침대 옆 깔개로 쓰는 북극곰 가죽 같잖아?”

그래도 코코슈카는 하녀를 고용해 인형에게 맞춤 제작한 옷을 입히고 시중을 들게 했고, 인형을 오페라 공연이나 카페에도 데려갔습니다. 이를 소재로 그림도 많이 그렸고요. 물론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욕했지요. 그럴 만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의 사랑이 깊어도 인형을 보다 보니 ‘현타’(현실 자각 타임)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몇 년 뒤인 1920년대 초, 코코슈카는 일종의 ‘행위 예술 공연’을 열었습니다. 인형의 목을 베고 와인병을 인형에 내리쳐 깨트린 거지요. “이 인형 덕분에 내 열정은 완전히 치료됐다.” 이번 기사의 맨 앞부분처럼, 다음 날 아침 그 흔적을 발견한 사람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고 합니다.
사랑은 시들고 예술만 남아

사랑이 끝날 때야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았겠지만, 둘은 별 탈 없이 삶을 이어갔습니다. 알마는 두 번째 남편과 이혼한 뒤 세 번째로 결혼했고, 죽을 때까지 유명 인사로 살았습니다. 코코슈카도 좋은 짝을 찾아 결혼했고, 나치 독일을 비판하다가 ‘퇴폐 예술가’ 목록에 오르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표현주의 화풍을 상징하는 대가 중 하나로 남으며 말년까지도 활발히 작품활동을 했습니다.

웃긴 건 그 와중에도 둘의 편지가 계속 끊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희대의 ‘집착남’과 ‘어장관리녀’가 만났기 때문이었을까요? 1946년 알마는 코코슈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 때 어떻게 우리가 헤어질 수 있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가….” 그걸 본 코코슈카는 결혼 5년 차인데도 “내가 사는 데로 놀러 오라”며 알마를 초대합니다. 하지만 알마는 가지 않았습니다. 나이 든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였습니다. 1927년 베네치아에서 우연히 마주쳐서, 한마디도 없이 서로를 지나쳐간 게 이들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1949년 70세 생일을 맞은 알마에게 코코슈카는 이런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알마! 당신은 아직도 길들지 않는 야생동물이오... (중략) ... 추신. 코코슈카의 가슴은 당신을 용서하기에.” 이 두 사람이 정확히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연인 관계라는 건 당사자들만 아는 거니 함부로 평가할 일도 아닙니다. 다만 둘 다 이웃으로 두고 싶은 종류의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코코슈카의 광기 어린 사랑 이야기와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예술은 인간 본연의 파괴적인 충동을 발산하는 가장 생산적인 통로’라는 말에 다시금 동의하게 됩니다. 그들의 광적인 사랑 덕에 우리는 인간 내면에 휘몰아치는 사랑과 열정, 광기를 묘사한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인형을 데리고 다니는 무시무시한 집착남이 되거나, ‘괴물 어장관리녀’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서도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사를 마감하는데 마침 밖에 비가 내리네요. 첫 부분에 나온 코코슈카의 그림과 잘 어울리는 날씨입니다. 구스타프 말러가 알마에게 헌정했던 교향곡 제8번과 함께 감상해 보시는 것도 좋겠네요(유튜브에 좋은 연주가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영감이 넘치는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i>*(참고자료) 이 기사의 내용은 서적 오스카 코코슈카(오스카 코코슈카 지음, 김금미 옮김), Oskar Kokoschka: A Life(Frank Whitford), Malevolent Muse: The Life of Alma Mahler (Oliver Hilmes), Art in Vienna 1898~1918: Klimt, Kokoschka, Schiele and their contemporaries(Peter Vergo)와 함께 Alma Mahler Doll Made for Oskar Kokoschka by Hermine Moos(메트로폴리탄 뮤지엄 홈페이지 설명)를 참조했습니다.

*내부 기사 시스템의 기술적 오류로 인해 4월 29일 업로드됐던 기사가 삭제되고, 5월 1일에 재업로드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좋아요 및 댓글이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소중한 반응 남겨주셨던 독자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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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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